시집 추천 : 곽은영 시인님의 검은 고양이 흰 개
시집 : 곽은영 시인님의 검은 고양이 흰 개
- 시인 소개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검은 고양이 흰 개』 『불한당들의 모험』 등이 있다.
- 시인의 말
누구나 자기만의 78장 카드를 가지고 있다
나는 당신에게 스물두 번째 메이저 카드를 건네고 싶다
- 시집 소개
그리운 마음일 때 ‘I Miss You’라고 하는 것은 ‘내게서 당신이 빠져 있기(miss) 때문에 나는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뜻이라는 게 소설가 쓰시마 유코의 아름다운 해석이다. 현재의 세계에는 틀림없이 결여가 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한때 우리를 벅차게 했으나 이제는 읽을 수 없게 된 옛날의 시집을 되살리는 작업 또한 그 그리움의 일이다. 어떤 시집이 빠져 있는 한, 우리의 시는 충분해질 수 없다.
더 나아가 옛 시집을 복간하는 일은 한국 시문학사의 역동성이 드러나는 장을 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나의 새로운 예술작품이 창조될 때 일어나는 일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예술작품에도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 시인 엘리엇의 오래된 말이다. 과거가 이룩해놓은 질서는 현재의 성취에 영향받아 다시 배치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빛에 의지해 어떤 과거를 선택할 것인가. 그렇게 시사(詩史)는 되돌아보며 전진한다.
이 일들을 문학동네는 이미 한 적이 있다. 1996년 11월 황동규, 마종기, 강은교의 청년기 시집들을 복간하며 ‘포에지 2000’ 시리즈가 시작됐다. “생이 덧없고 힘겨울 때 이따금 가슴으로 암송했던 시들, 이미 절판되어 오래된 명성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시들, 동시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젊은 날의 아름다운 연가(戀歌)가 여기 되살아납니다.” 당시로서는 드물고 귀했던 그 일을 우리는 이제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 느낀 점
불한당들의 모험이 좋아서 읽게 되었는데, 동화적이고 신화적인 부분도 느껴졌다. 동화적이고 이색적인 세상을 여행하는 느낌을 받았다. 푸릇한 초원 같은 하늘을 거니는 것 같다가도 새벽의 가라앉은 물빛 같기도 했다. 동화적인 색채로 며칠 동안 함께 여행을 다녀온 것 같았다.
- 마음에 드는 구절
고양이 울음소리가 여전히 낭만적인 밤
고양이도 외롭기 때문에 울고 있지
호주머니를 뒤집어 붉은 스티치를 확인할 때까지
당신들에게 선물을 했다
파란 뱀에게도 달걀을 선물했다
먹어봐 한 번도 보지 못한 바다 맛이 날 거야
사랑에 미친 가님, 다들 나를 그렇게 불렀다
사랑에 미친 가님, 나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것은 얼간이라는 뜻이거나 봉이란 뜻이었다
- 1부 불한당들의 모험6 –사랑의 미친 가님 중 일부분 발췌
그러나 당신의 불이 꺼져가고 있었다
몇 알의 동전을 던져 불을 살릴 수도 없을 만큼
유일하게 견고해서 무시무시한 당신의 검은 아궁이
이제 당신이 마지막 장작이 되어야 할지도 모르지
1부 불한당들의 모험 9 중 일부분 발췌
지상으로 곤두박질치지 않기 위해 초월적인 힘으로 달린다
...
커다란 프로펠러를 향해 돌진할 수 있었다면 아마 공중 계단을 밟았을지도
...
우린 우리의 무게를 견뎌야 해요 곧바로 서 있으려면요
-1부 불한당들의 모험 10 중 일부분 발췌
새벽이 오기에는 아주아주 검은 밤이었다
무너진 벽의 속만큼 어둠이 파먹어 들어가는 밤이었다
-2부 벽의 견해 중 일부분 발췌
그러나 엄마, 엄마가 죽은 날 알아버렸어요
내가 바람이라는 사실을
-2부 셀프 포트레이트 중 일부분 발췌
밤이 한 계단씩 더 차가워질 때마다 뱀은 더 느려졌다
나는 초조해졌다
...
길에서 잠들면 안 돼, 이번에 영영 얼지도 몰라
...
목도리를 감아주자 뱀이 막 잠들려던 눈을 떴다
잘자 계절이 바뀌면 널 다시 보러 올 거야
-2부 파란 뱀과 한철 중 일부분 발췌
테이블 위에 하루의 글자를 털어놓고
손바닥으로 쓸어모으면 사전에 실리지 않은 최초의 낱말이 생기기도 했다
...
하루치의 일기 대신 글자들을 오렸는데 뒤죽박죽 글자들이
내가 하지 않은 일을 증언해요
변명하고 싶은데, 이게 나의 전부예요
-2부 투명 인간의 여행 가방 중 일부분 발췌
하늘에는 반딧불이가 처음 보는 별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우리의 발밑에는 흥건한 피는 그대로 마룻바닥이 받아먹었다
우리는 입맛을 다시는 마룻바닥에 진저리를 치며
쾅쾅 발로 짓밟고 떠났지
...
우리는 턴테이블 위 바늘처럼 서로의 이름을 읽었지만
불협화음으로도 부를 수 없는 소음이 뒹굴었다
...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짜 증명서 같은 날들
증오했던 것은 네가 아니라 더 일찍 바늘을 내리지 못한 나의 손
-2부 불량엽서 중 일부분 발췌
듣고 있니 듣고 있니 거대한 귀 속으로 또박또박 걸어가는 초침소리
나는 여섯 살 몸에서 한 뼘도 자라지 않은 채 오그라들어 간다
시계를 삼키고 수염을 핥고 있는 흰 양이 이번에는 내
머리통을 빤히 쳐다보는 집
-2부 스탕달 신드롬 중 일부분 발췌
멀리 새콤달콤한 지붕들이 하나씩 돋아나
꿈의 카펫이 천천히 펼쳐지는데
시계 두 개를 물려받았지만
어느 나라의 시간을 말해주는 걸까
싹둑싹둑 시간을 써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2부 회중시계 중 일부분 발췌
너는 왕이었으나 늘고 절름발이가 되어 차갑게 식었고
너는 다 자라자 자신의 땅을 찾아 떠났다 너는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두 번 어미가 되었고 너는 영원한 아기로
곁에서 가르랑거렸다 너는 봄에서 출발했으며 너는 체취로 엮은
빈집을 주었고 너는 가을에서 고꾸라졌다가 겨울에서 뛰어올랐다
너는 투명한 다리를 건너 지붕에서 지붕으로 너의 움직임을 따라
허공 속 숨어 있던 공간이 열렸다 닫히고
-1부 너는 중 일부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