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추천: 박시하 시인님의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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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추천: 박시하 시인님의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

by 서_이 2021. 12. 3.

 

 

  • 시인 소개

 박시하 시인님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편집디자이너로 일했다. 2008[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았고 2012년 첫 시집 눈사람의 사회(문예 중앙)2016년 두 번째 시집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문학동네)를 냈다. 산문집 지하철 독서 여행자(인물과사상사),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을 냈으며 독립잡지 더 멀리의 디자인을 맡고 있다. 시와 산문을 계속 쓰고 있으며, 소설 읽기와 음악 듣기, 산책하기를 사랑한다. 성차, 성 정체성, 나이와 사회적 지위, 신체적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위계와 폭력을 반대한다고 한다.

 

  • 시집 소개

 2008작가세계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박시하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지난 2012년에 펴낸 첫 시집 눈사람의 사회이후 비교적 빠른 시일에 묶였다 싶은 작가님의 신작 시집은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라는 제목으로 3부로 나뉘어 총 52편의 시가 담겨 있다.

 

박시하 시인의 이번 시집은 흰 돌과 검은 돌을 마주한 바둑판을 사이에 둔 너와 나, 다시 말해 삶과 죽음의 표방으로 크게 비유할 수 있을 듯하다. 이는 다시 말해 시의 근원을 자문자답하는 과정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고함보다는 침묵이, 입보다는 귀의 입장에서 읽히는 시로 보이는데, 애써 참아보려 하지만 정독하고 났을 때 남는 '슬픔'이라는 단어가 참 절절히도 만져진다.

 

눈물은 주지 않고 눈물이 떨어졌다 말아버린 페이지만을 우리에게 읽게 하는 배려, 그 감춤은 박시하 시가 주는 미덕 가운데 으뜸인데 도통 엄살을 모르고 도통 수다를 모르는 그녀의 시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건 가볍고 무심한 깃털 한 개다. 그러나 그 가뿐한 무게가 내 호주머니 속에 들어오는 사이 우리는 각자의 시심 안에서 크게 부푸는 새의 한살이를 스스로 겪어내는 경험을 감내하게 될 것이다. 안의 소요는 오래 묵직할 것이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 시집을 읽으며 느낀 점

 짧은 문장 속에 큰 충격이 있다.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혹은 떠나보낸 날의 맑은 하늘 아래 홀로 내던진 것 같은 색채를 가졌다. 서정적이다라는 말에 담기에는 좀 더 힘이 있고 이야기다웠다. 말과 말 사이 여백에 더 많은 말이 담긴 것 같았다. 간극의 중요성을 알았다. 읽을수록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려진 그림의 색채는 물을 많이 탄 짙은 하늘빛.

 

 

  • 마음에 드는 구절

차가운 유리병 속에서

내 취미는 영원히 무릎을 꿇는 것

 

슬퍼지기 위해서 이별하는 연인들처럼

증거도 없이 믿었다

 

.....중략

 

답장을 보내는 대신

점점 얕아지는 강물 위에서

푸른 배의 꿈을 꾸었다

 

슬픔을 믿을 수는 있었지만

어떤 기도가 입술을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먼 강변에 있는 사람에게 입술을 떼어 보냈다

입술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유리병은 너무 뜨거웠다

익숙하고 붉은 지옥의 형상

이 슬픈 구덩이, 내 죽음의 역작

 

천국에는 정들어 떠날 수 없는 모르는 말들이 잔뜩 있었다

 

-1부 일요일_일요일 중 일부분 발췌

 

  • 천국에 숨어 있는 말들을 가져올 수 있다면 감정의 색채와 냄새까지도 온전히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숨결은 거칠다

누군가 그를 통해 나를 본다면

울고 있구나

햇빛이 너를 통과해서

웃고 있구나

 

죽은 나무에게 숨을 얹는다

그가 나보다 더 먼 여행을 할 것이기에

언젠가 그의 날에

그는 내게 걸어와 안경을 건네겠지

우주처럼

빛나는 안경을

 

살아 있는 그림자를 나는 볼 것이다

그 사랑을

사라지는 빛은 노란색이고

그림자는 검고 검다

 

-1부 일요일_ 콜 니드라이의 안경 중 일부분 발췌

 

  • 햇빛이 바스러지는 커다란 나무 아래서 홀로 울고 있다. 이대로 나무의 뿌리 중 하나가 되어 영원히 잠들고만 싶은데 새들이 지저귀고, 햇볕은 너무 따스하다.

날지 못하는 말이

검은 물속에 떠 있다

 

이뤄지지 않는 악몽처럼

가라앉은 배의 썩은 기둥처럼

우리는 조금씩 물질이 되어

 

한쪽 날개가 녹는다

 

-2부 사랑과 죽음의 팡세_ 새 중 일부분 발췌

 

  • 목 밖으로 뱉지 못하고 가슴 언저리에서 가라앉기만 하는 말은 끝내 썩는다. 썩고 썩어서 사람마저 썩게 만든다. 날지 못 하는 말은 자유로움도 느껴보지 못하고 끝내 죽어갔다.

캄캄한 밤의 공원에서

유서를 썼다

 

....중략

 

밤의 흰 새처럼

잊어버린 새의 이름처럼 날아갔다

 

아이들이 텅 빈 미끄럼틀을 타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편지를 보낸

나 없는 세계에서 왔다

나는 유서를 밤의 공원에

벤치 아래의 어둠 속에 묻었다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내가 어딘가로 떠났고

이 세계로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긴 한숨 소리가 번져나갔고

나는 유서를 어디 묻었는지 잊어버렸다

 

-3부 불안의 숲_ 밤의 공원에서 중 일부분 발췌

 

  • 내가 죽는다면, 내가 없는 세상은 좀 더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했다. 발자국마다 죽음을 질척하게 묻히며 걸어간다. 그 공원에는 이면의 냄새가 짙게 난다. 이 세계로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고 싶은 이들이 남긴 마지막 인사가 공원 곳곳에 버려져 있었다.

 

그 여름에 세계는

저녁의 거울처럼 두렵고

훌륭한 죽음이 되어갔습니다

 

-3부 불안의 숲_ 여름의 주검 중 일부분 발췌

 

  • 여름 방학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계절과 맞지 않는 추위에 덜덜 떨었다. 벽 너머의 목소리에 눈물이 났다. 흑백의 심해가 거울처럼 나를 비추면 그 안에서 나는 나를 구해낼 수 없었다. 문도 창문도 없다는 결말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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