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소개
박시하 시인님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편집디자이너로 일했다. 2008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았고 2012년 첫 시집 『눈사람의 사회』(문예 중앙)와 2016년 두 번째 시집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문학동네)를 냈다. 산문집 『지하철 독서 여행자』(인물과사상사),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을 냈으며 독립잡지 『더 멀리』의 디자인을 맡고 있다. 시와 산문을 계속 쓰고 있으며, 소설 읽기와 음악 듣기, 산책하기를 사랑한다. 성차, 성 정체성, 나이와 사회적 지위, 신체적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위계와 폭력을 반대한다고 한다.
- 시집 소개
2008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박시하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지난 2012년에 펴낸 첫 시집 『눈사람의 사회』 이후 비교적 빠른 시일에 묶였다 싶은 작가님의 신작 시집은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라는 제목으로 3부로 나뉘어 총 52편의 시가 담겨 있다.
박시하 시인의 이번 시집은 흰 돌과 검은 돌을 마주한 바둑판을 사이에 둔 너와 나, 다시 말해 삶과 죽음의 표방으로 크게 비유할 수 있을 듯하다. 이는 다시 말해 시의 근원을 자문자답하는 과정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고함보다는 침묵이, 입보다는 귀의 입장에서 읽히는 시로 보이는데, 애써 참아보려 하지만 정독하고 났을 때 남는 '슬픔'이라는 단어가 참 절절히도 만져진다.
눈물은 주지 않고 눈물이 떨어졌다 말아버린 페이지만을 우리에게 읽게 하는 배려, 그 감춤은 박시하 시가 주는 미덕 가운데 으뜸인데 도통 엄살을 모르고 도통 수다를 모르는 그녀의 시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건 가볍고 무심한 깃털 한 개다. 그러나 그 가뿐한 무게가 내 호주머니 속에 들어오는 사이 우리는 각자의 시심 안에서 크게 부푸는 새의 한살이를 스스로 겪어내는 경험을 감내하게 될 것이다. 안의 소요는 오래 묵직할 것이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 시집을 읽으며 느낀 점
짧은 문장 속에 큰 충격이 있다.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혹은 떠나보낸 날의 맑은 하늘 아래 홀로 내던진 것 같은 색채를 가졌다. 서정적이다라는 말에 담기에는 좀 더 힘이 있고 이야기다웠다. 말과 말 사이 여백에 더 많은 말이 담긴 것 같았다. 간극의 중요성을 알았다. 읽을수록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려진 그림의 색채는 물을 많이 탄 짙은 하늘빛.
- 마음에 드는 구절
차가운 유리병 속에서
내 취미는 영원히 무릎을 꿇는 것
슬퍼지기 위해서 이별하는 연인들처럼
증거도 없이 믿었다
.....중략
답장을 보내는 대신
점점 얕아지는 강물 위에서
푸른 배의 꿈을 꾸었다
슬픔을 믿을 수는 있었지만
어떤 기도가 입술을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먼 강변에 있는 사람에게 입술을 떼어 보냈다
입술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유리병은 너무 뜨거웠다
익숙하고 붉은 지옥의 형상
이 슬픈 구덩이, 내 죽음의 역작
천국에는 정들어 떠날 수 없는 모르는 말들이 잔뜩 있었다
-1부 일요일_일요일 중 일부분 발췌
- 천국에 숨어 있는 말들을 가져올 수 있다면 감정의 색채와 냄새까지도 온전히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숨결은 거칠다
누군가 그를 통해 나를 본다면
울고 있구나
햇빛이 너를 통과해서
웃고 있구나
죽은 나무에게 숨을 얹는다
그가 나보다 더 먼 여행을 할 것이기에
언젠가 그의 날에
그는 내게 걸어와 안경을 건네겠지
우주처럼
빛나는 안경을
살아 있는 그림자를 나는 볼 것이다
그 사랑을
사라지는 빛은 노란색이고
그림자는 검고 검다
-1부 일요일_ 콜 니드라이의 안경 중 일부분 발췌
- 햇빛이 바스러지는 커다란 나무 아래서 홀로 울고 있다. 이대로 나무의 뿌리 중 하나가 되어 영원히 잠들고만 싶은데 새들이 지저귀고, 햇볕은 너무 따스하다.
날지 못하는 말이
검은 물속에 떠 있다
이뤄지지 않는 악몽처럼
가라앉은 배의 썩은 기둥처럼
우리는 조금씩 물질이 되어
한쪽 날개가 녹는다
-2부 사랑과 죽음의 팡세_ 새 중 일부분 발췌
- 목 밖으로 뱉지 못하고 가슴 언저리에서 가라앉기만 하는 말은 끝내 썩는다. 썩고 썩어서 사람마저 썩게 만든다. 날지 못 하는 말은 자유로움도 느껴보지 못하고 끝내 죽어갔다.
캄캄한 밤의 공원에서
유서를 썼다
....중략
밤의 흰 새처럼
잊어버린 새의 이름처럼 날아갔다
아이들이 텅 빈 미끄럼틀을 타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편지를 보낸
나 없는 세계에서 왔다
나는 유서를 밤의 공원에
벤치 아래의 어둠 속에 묻었다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내가 어딘가로 떠났고
이 세계로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긴 한숨 소리가 번져나갔고
나는 유서를 어디 묻었는지 잊어버렸다
-3부 불안의 숲_ 밤의 공원에서 중 일부분 발췌
- 내가 죽는다면, 내가 없는 세상은 좀 더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했다. 발자국마다 죽음을 질척하게 묻히며 걸어간다. 그 공원에는 이면의 냄새가 짙게 난다. 이 세계로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고 싶은 이들이 남긴 마지막 인사가 공원 곳곳에 버려져 있었다.
그 여름에 세계는
저녁의 거울처럼 두렵고
훌륭한 죽음이 되어갔습니다
-3부 불안의 숲_ 여름의 주검 중 일부분 발췌
- 여름 방학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계절과 맞지 않는 추위에 덜덜 떨었다. 벽 너머의 목소리에 눈물이 났다. 흑백의 심해가 거울처럼 나를 비추면 그 안에서 나는 나를 구해낼 수 없었다. 문도 창문도 없다는 결말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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